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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6화/ 반값 견적서

---**지난 이야기** — 한성출판이 예고된 날짜에 부도났다. 대성인쇄는 사억을 물렸고, 태호를 비웃던 업계는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태호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대표이사 강태호.새 명함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전쟁이 시작됐다."사장님, 이것 좀 보세요."김 대리가 내민 건 우리 단골손님이 보내온 견적서 사진이었다. 대성인쇄 로고가 박힌 견적서.**시집 100부 인쇄 — 175,000원.**우리 단가의 딱 절반이었다."이 가격이면 종이값 빼고 남는 게 없는데... 아니, 남는 게 아니라 찍을수록 손해예요. 대성은 왜 이런 짓을...""손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네?""우리 손님 뺏어서 돈 벌자는 게 아니에요. 밑지고 팔아서 우리를 말려 죽이고, 우리가 쓰러지면 그때 가격을 올리겠다는 겁니다. 사..

카테고리 없음 2026.07.21

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5화/폭탄은 예고된 날에 터졌다.

---**지난 이야기** — 선입금 소량 인쇄로 공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중에 한성출판 어음이 반값에 돌기 시작했다. 태호는 예고했다. 조대성이 곧 찾아올 거라고.---약속했던 두 달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장부가 말했다. 월 주문 백여든세 건. 떼인 돈 0원. 아버지는 요즘 아침마다 공장에 나와 소량 작업 물량이 트럭에 실리는 걸 말없이 지켜보다 들어가신다.그리고 내 예고는 사흘 늦게 맞았다."어이구, 강 사장! 아니, 이제 강 사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검은색 그랜저에서 내린 조대성이 팔을 벌리며 걸어왔다. 10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이 인간 입장에선 지난달 조합 모임에서 봤겠지.전생에 우리 공장 경매장에서 마지막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6.07.21

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4화/업계가 비웃은 방식

---**지난 이야기** — 소량 인쇄로 방향을 튼 공장에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필 그때, 공장 담보 대출 만기 통보가 날아왔다.---"선입금이요. 주문할 때 인쇄비 전액을 먼저 받는 겁니다."내 말에 미스 김이 볼펜을 떨어뜨렸다."사장님, 이 바닥에 그런 게 어딨어요. 물건 주고 한 달 뒤에 받는 것도 감지덕지인데...""그건 회사끼리 얘기고요. 우리 새 손님들은 회사가 아니잖습니까."그게 핵심이었다. 독립출판 손님들은 개인이다. 개인은 어음이 없다. 외상 장부도 없다. 카드 아니면 계좌이체. 물건 받기 전에 돈부터 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주문서 접수하면 입금 확인 후 작업 시작. 이 원칙 하나면 우리 공장엔 떼인 돈이라는 게 없어집니다.""손님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카테고리 없음 2026.07.21

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3화/첫 손님

---**지난 이야기** — 어음을 거절하자 한성출판은 거래를 끊고 물량을 대성인쇄로 넘겼다. 아버지에게 받아낸 시간은 두 달. 태호는 달력에 석 달 뒤 날짜를 표시했다.---한성 물량이 빠진 공장은 사흘 만에 조용해졌다.인쇄기 여덟 대 중에 세 대가 섰다. 기계 소리가 줄어든 공장은 생각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웠다. 박씨 아저씨는 멈춘 기계를 걸레로 닦고 또 닦았다. 기술자는 노는 기계를 못 견딘다."사장. 두 달이라며. 계획은 있는 거야?""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할 겁니다."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2016년의 인터넷. 느려 터진 익스플로러를 열고, 독립출판 커뮤니티 카페 세 군데에 글을 올렸다.**[태호인쇄] 소량 인쇄 전문으로 전환합니다. 시집·독립출판물 100부부터. 견적 문의 환영.**..

카테고리 없음 2026.07.21

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2화/ 어음거절의 대가

---**지난 이야기** — 부도난 날, 10년 전으로 돌아온 태호. 몰락의 첫 단추였던 한성출판의 어음을 전화로 거절해버렸다. 그리고 등 뒤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방금 뭐라고 했냐."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다. 이 양반이 진짜 화났을 때 나오는 톤이었다.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사무실에 있던 미스 김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고, 박씨 아저씨는 못 본 척 인쇄기 쪽으로 돌아섰다."들으신 대로입니다. 한성 어음, 안 받기로 했습니다.""한성이 몇 년 거래처인 줄 알아? 십오 년이야, 십오 년!""압니다.""알긴 뭘 알아! 어음 거래 한두 번 해? 석 달 뒤에 현금 되는 걸 왜 마다해!"석 달 뒤. 나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석 달 뒤 그 어음은 종잇조각이 된다. 한성출판은 올겨울을 못 넘긴다. 사장이..

카테고리 없음 2026.07.21

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1화/ 부도난날 10 년 전으로

---부도 통지서를 받은 날, 나는 10년 전 아침에 눈을 떴다.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누렇게 바랜 벽지와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 15년 전에 이사 나온 그 낡은 집 안방이었다."여보, 안 일어나? 공장 늦겠다."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아내였다. 3년 전, 내 곁을 떠난 아내의 목소리.나는 벌떡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앞치마를 두른 아내가 주방에서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 마흔둘의 아내가 거기 서 있었다."왜 그렇게 봐? 귀신 봤어?""...아니. 아무것도."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식탁 위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렸다.**2016년 7월 18일.**부도 통지서가 날아온 그날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6.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