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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선입금 소량 인쇄로 공장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중에 한성출판 어음이 반값에 돌기 시작했다. 태호는 예고했다. 조대성이 곧 찾아올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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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했던 두 달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장부가 말했다. 월 주문 백여든세 건. 떼인 돈 0원. 아버지는 요즘 아침마다 공장에 나와 소량 작업 물량이 트럭에 실리는 걸 말없이 지켜보다 들어가신다.
그리고 내 예고는 사흘 늦게 맞았다.
"어이구, 강 사장! 아니, 이제 강 사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검은색 그랜저에서 내린 조대성이 팔을 벌리며 걸어왔다. 10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이 인간 입장에선 지난달 조합 모임에서 봤겠지.
전생에 우리 공장 경매장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그 얼굴. 그때 이 인간은 우리 인쇄기 여덟 대를 고철값에 쓸어가면서 나한테 그랬다. "사업은 머리로 하는 거야, 강 사장."
"조 사장님이 여기까지 웬일이십니까."
"지나가다 들렀지! 요즘 태호인쇄가 그렇게 재밌는 장사를 한다면서? 백 부, 이백 부... 푼돈 줍고 다닌다며?"
조대성은 공장 안을 둘러보며 낄낄댔다. 그러다 벽에 걸린 달력 앞에서 멈췄다. 미스 김이 쳐놓은 빨간 동그라미. 이제 열흘 남은 날짜.
"이건 뭐야? 무슨 날인데 동그라미까지 쳐놨어?"
"기념일입니다."
"기념일?"
"조 사장님도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아주 크게."
조대성의 눈이 가늘어졌다. 뭔가 말하려다 말고, 그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거 참 실없는 소리 하고는. 아 참, 한성 물량 말이야. 미안하게 됐어? 원래 자네네 밥그릇이었는데 말이야. 뭐, 사업이 다 그런 거지."
"괜찮습니다. 그 밥그릇, 오래 못 드실 겁니다."
"...뭐?"
"맛있게 드시라고요."
조대성은 기분 나쁜 얼굴로 돌아갔다. 박씨 아저씨가 옆에서 조용히 물었다.
"사장. 저 인간이 사흘 늦게 온 거 빼고는, 자네 말이 다 맞아가고 있어. 어떻게 아는 거야?"
"곧 하나 더 맞을 겁니다. 열흘 뒤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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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뒤. 폭탄은 정확히 터졌다.
**한성출판 최종 부도. 발행 어음 총액 23억. 사장 잠적.**
업계 단체 문자방이 아침부터 뒤집어졌다. 미스 김은 달력의 빨간 동그라미와 나를 번갈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장님... 이 날짜... 이걸 어떻게..."
"김 대리."
"네? 아, 네!"
"오늘부로 대리 답니다. 월급도 올려드릴게요. 달력 관리 잘한 공로로."
그날 오후 조합 사무실은 초상집이었다. 한성 어음을 물린 공장이 넷. 그중에 제일 크게 물린 게 대성인쇄였다. 우리한테서 뺏어간 물량을 늘리겠다고 석 달 치 작업비를 전부 어음으로 받아놨다는 거다.
"사억이 넘는다더라. 대성 조 사장, 아침에 한성 사무실 찾아갔다가 빈 책상만 보고 왔대."
유 사장이 넋 나간 얼굴로 소주를 들이켰다. 나를 비웃던 그 입이 오늘은 나한테 존댓말 비슷한 걸 하고 있었다.
"강 사장... 자네 그때 어음 거절했다며. 어떻게 알았나? 응? 뭘 보고 안 거야?"
"결제가 보름 밀렸었습니다. 그게 다예요."
"결제야 밀릴 수도 있지, 그걸로 어떻게..."
"밀릴 수도 있다고 넘기신 분들 어음이 지금 종잇조각이 됐고요."
좌중이 조용해졌다. 나는 소주 한 잔을 비우고 일어섰다.
집에 오니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계셨다. 상 위에 소주병 하나와 잔이 두 개.
"앉아라."
나는 앉았다. 아버지가 말없이 잔을 채워주셨다. 30년 사장 인생에서 아들한테 처음 따라주는 술이었다.
"...태호야."
"네."
"네가 사장 해라. 나는 이제 낚시나 다니련다."
*(6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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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화 예고
상처 입은 짐승이 제일 위험하다. 사억을 물린 조대성이 이를 갈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이빨은 태호가 일군 소량 인쇄 시장을 정면으로 물어뜯으러 온다. 반값 견적서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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