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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부도난 날, 10년 전으로 돌아온 태호. 몰락의 첫 단추였던 한성출판의 어음을 전화로 거절해버렸다. 그리고 등 뒤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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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뭐라고 했냐."
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다. 이 양반이 진짜 화났을 때 나오는 톤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사무실에 있던 미스 김이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고, 박씨 아저씨는 못 본 척 인쇄기 쪽으로 돌아섰다.
"들으신 대로입니다. 한성 어음, 안 받기로 했습니다."
"한성이 몇 년 거래처인 줄 알아? 십오 년이야, 십오 년!"
"압니다."
"알긴 뭘 알아! 어음 거래 한두 번 해? 석 달 뒤에 현금 되는 걸 왜 마다해!"
석 달 뒤. 나는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석 달 뒤 그 어음은 종잇조각이 된다. 한성출판은 올겨울을 못 넘긴다. 사장이 빼돌린 돈으로 필리핀에 리조트를 샀다는 게 부도 나고 반년 뒤에야 업계에 퍼졌으니까. 전생의 나는 그 종잇조각을 붙들고 은행 문턱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하지만 그걸 무슨 수로 설명하나.
"아버지. 한성 요즘 결제가 계속 늦었습니다. 두 달 전에도 보름 밀렸고요. 잘 나가는 회사가 어음 들고 나온다? 이거 신호입니다."
"경기 안 좋으면 다 그래!"
"경기가 안 좋으니까 더 조심해야죠. 어음 물리고 나면 그땐 늦습니다."
아버지가 지팡이로 바닥을 쿵, 내리찍었다.
"삼십 년을 이 바닥에서 굴렀다. 거래처는 신용이야. 어음 못 받겠다는 순간 거래 끝나는 거다."
"끊어지면, 새로 뚫으면 됩니다."
"뭐?"
"한성 물량 없어도 굴러가게 만들겠습니다. 두 달만 주십시오. 두 달 안에 못 하면, 제가 한성 가서 무릎 꿇고 어음이든 뭐든 받아오겠습니다."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한참 나를 노려봤다. 삼십 년 사장의 눈. 사람 속을 저울에 다는 눈이었다.
"...두 달이다."
지팡이 소리가 멀어졌다. 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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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간도 크네."
박씨 아저씨가 커피 믹스를 타서 내밀었다.
"회장님한테 그렇게 대드는 거 처음 본다."
"대든 게 아니라 협상한 겁니다."
"그래서, 믿는 구석은 있고?"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2016년 하반기. 이 바닥에 뭐가 오는지 나는 안다. 독립출판이 뜬다. 소량 인쇄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대형 인쇄소들이 "그런 푼돈 일감을 누가 받아"라며 코웃음 치는 동안, 그 푼돈들이 모여 시장이 되는 걸 나는 봤다. 우리 같은 규모가 먹기 딱 좋은 시장.
"아저씨. 우리 기계로 백 부짜리 소량 작업, 단가 맞출 수 있죠?"
"백 부? 그걸 일이라고 받게? 판 거는 값도 안 나와."
"그 백 부짜리 손님이 천 명이면요?"
박씨 아저씨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나를 봤다.
"...뭔 소리야 그게."
그때 미스 김이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장님! 한성출판에서 팩스 왔는데요."
받아든 팩스 용지에는 딱 두 줄이 적혀 있었다.
**금일부로 귀사와의 모든 거래를 중단함.**
**향후 당사 물량은 대성인쇄에서 진행함을 통보함.**
대성인쇄.
조대성.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스 김이 흠칫할 만큼 서늘한 웃음이었을 거다.
조대성. 전생에 우리 공장을 밟고 올라선 남자. 그 인간이 지금, 석 달 뒤에 터질 폭탄을 제 발로 주워 갔다.
"사장님... 왜 웃으세요? 큰일 났는데."
"미스 김."
"네?"
"달력에 표시 좀 해줘요. 오늘부터 딱 석 달 뒤."
"석 달 뒤... 무슨 날인데요?"
"그날 알게 될 겁니다."
*(3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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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화 예고
한성 물량이 빠진 공장은 당장 이번 달부터 허리가 휜다. 태호가 꺼내 든 카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백 부짜리 손님들'. 그리고 첫 손님이 공장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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