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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4화/업계가 비웃은 방식

by sunghoon79797 2026.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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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소량 인쇄로 방향을 튼 공장에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필 그때, 공장 담보 대출 만기 통보가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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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금이요. 주문할 때 인쇄비 전액을 먼저 받는 겁니다."

내 말에 미스 김이 볼펜을 떨어뜨렸다.

"사장님, 이 바닥에 그런 게 어딨어요. 물건 주고 한 달 뒤에 받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그건 회사끼리 얘기고요. 우리 새 손님들은 회사가 아니잖습니까."

그게 핵심이었다. 독립출판 손님들은 개인이다. 개인은 어음이 없다. 외상 장부도 없다. 카드 아니면 계좌이체. 물건 받기 전에 돈부터 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람들이다.

"주문서 접수하면 입금 확인 후 작업 시작. 이 원칙 하나면 우리 공장엔 떼인 돈이라는 게 없어집니다."

"손님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싫어하는 건 돈 떼먹을 생각 있는 쪽뿐입니다."

그리고 손님들은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금하면 3일 안에 작업 시작"이라는 약속에 열광했다. 이 바닥에서 개인 손님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비싼 견적이 아니라, 돈 주고도 한없이 밀리는 납기였으니까.

돈이 먼저 돌기 시작하니 대출 만기는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은행에 가서 연장 대신 절반을 갚아버렸다. 창구 직원이 두 번 물었다. 정말 상환하시는 거 맞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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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조합 모임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인근 인쇄소 사장들이 모이는 자리. 아버지 대신 나간 그 자리에서, 나는 안주가 되어 있었다.

"강 사장! 요즘 백 부짜리 찍는다며?"

인쇄골목에서 제일 큰 공장을 돌리는 유 사장이 소주잔을 들고 낄낄댔다.

"우리 집은 그런 거 견적 문의 오면 끊어버려. 전화비가 아까워서. 하하하!"

"태호인쇄가 어렵긴 어려운가 봐. 한성도 대성으로 갈아탔다던데."

"어이, 강 사장. 대출 필요하면 말해. 이자는 좀 쳐줘야겠지만!"

좌중이 웃었다. 전생의 나라면 얼굴이 벌게져서 소주만 들이켰을 거다.

지금의 나는 같이 웃었다. 진심으로.

이 사람들 중 절반이 5년 안에 문을 닫는다. 소량 시장을 "푼돈"이라 부르며 버린 대가를, 디지털 인쇄기로 무장한 신생 업체들한테 치르게 된다. 나는 그 미래를 장례식처럼 지켜본 사람이다.

"유 사장님, 그 전화비 아까운 문의들 말입니다."

"응?"

"저희한테 돌려주십시오. 문의 하나당 제가 담배 한 갑씩 사드리죠."

"뭐? 하하! 그래, 가져가! 얼마든지 가져가!"

유 사장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자기 공장으로 갈 미래의 손님 수백 명을 방금 담뱃값에 넘겼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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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니 자정이 다 됐는데 아버지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문틈으로 보였다. 아버지는 돋보기를 쓰고 뭔가를 읽고 있었다. 우리 공장 이번 달 주문 장부였다. 소량 주문 백스물여섯 건이 빼곡히 적힌.

아버지는 장부를 덮고, 한참 천장을 봤다. 그리고 혼잣말이 들렸다.

"...허, 그놈 참."

나는 못 들은 척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웃음이 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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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공장에 나가자마자 박씨 아저씨가 나를 붙잡았다. 표정이 묘했다.

"사장. 어제 명동 쪽에서 일하는 후배한테 술 사줬는데 말이야."

"네."

"이상한 소리를 하더라고. 요즘 시중에... 한성출판 어음이 돈다는 거야. 그것도 반값에."

왔다.

어음이 반값에 시장을 돈다는 건 딱 하나를 뜻한다. 받은 놈들이 전부 폭탄 돌리기를 시작했다는 것. 부도 전에 나타나는 마지막 징조.

나는 벽에 걸린 달력을 봤다. 미스 김이 빨간 동그라미를 쳐놓은 날짜까지, 이제 삼 주.

"사장, 뭔가 아는 얼굴인데."

"아저씨."

"어."

"다음 주쯤, 조대성이 웃는 낯으로 여기 찾아올 겁니다. 그때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어보세요."

*(5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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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화 예고
한성출판 부도 D-21. 폭탄이 터지기 전, 아무것도 모르는 조대성이 태호인쇄를 찾아온다 — "야, 강태호. 요즘 푼돈 줍고 다닌다며?" 그리고 태호를 비웃던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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