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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어음을 거절하자 한성출판은 거래를 끊고 물량을 대성인쇄로 넘겼다. 아버지에게 받아낸 시간은 두 달. 태호는 달력에 석 달 뒤 날짜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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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 물량이 빠진 공장은 사흘 만에 조용해졌다.
인쇄기 여덟 대 중에 세 대가 섰다. 기계 소리가 줄어든 공장은 생각보다 훨씬 을씨년스러웠다. 박씨 아저씨는 멈춘 기계를 걸레로 닦고 또 닦았다. 기술자는 노는 기계를 못 견딘다.
"사장. 두 달이라며. 계획은 있는 거야?"
"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할 겁니다."
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2016년의 인터넷. 느려 터진 익스플로러를 열고, 독립출판 커뮤니티 카페 세 군데에 글을 올렸다.
**[태호인쇄] 소량 인쇄 전문으로 전환합니다. 시집·독립출판물 100부부터. 견적 문의 환영.**
전생의 기억 속에서, 이 카페들은 2~3년 뒤 회원 수십만짜리로 커진다. 지금은 다들 인쇄소 문턱에서 퇴짜 맞고 우는 글이 절반인 곳. 목마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우물에 나는 두레박을 먼저 내렸다.
"그게 뭐야? 인터넷으로 일감을 받게?"
"낚싯대 던져놓은 겁니다. 물고기가 어디 모여 있는지 아는 낚싯대요."
박씨 아저씨는 혀를 찼다. 사흘만 기다려 보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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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걸렸다.
"저기... 여기가 태호인쇄 맞나요?"
공장 문 앞에 서 있는 건 스물 중반쯤 되는 청년이었다. 낡은 백팩을 앞으로 끌어안고 있는 폼이, 문전박대를 몇 번 당하고 온 얼굴이었다.
"카페 글 보고 왔는데요. 시집을... 딱 백 부만 찍고 싶어서요."
박씨 아저씨의 눈썹이 꿈틀했다. 백 부. 판 걸고 기계 세팅하는 품값도 안 나오는 물량. 전생의 나였어도 "저희는 최소 천 부부터입니다" 하고 돌려보냈을 거다.
"다른 데는 뭐라던가요?"
"...세 군데서 거절당했어요. 한 군데는 견적을 주긴 했는데, 백 부에 팔십만 원이래요."
일부러 부른 배짱 견적이다. 가라는 소리지.
"저희는 삼십오만 원에 해드리겠습니다. 표지 코팅 포함해서요."
청년의 눈이 커졌다. 옆에서 박씨 아저씨 눈은 더 커졌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원고는 저희가 드리는 규격에 맞춰서 주세요. 그럼 작업이 빨라져서 이 단가가 가능합니다."
"네! 네, 맞출게요!"
청년은 계약금을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냈다. 꼬깃꼬깃한 오만 원권 두 장. 아르바이트비였을 거다.
청년이 돌아가고, 박씨 아저씨가 팔짱을 꼈다.
"삼십오. 그거 남는 장사 맞아?"
"딱 십만 원 남습니다."
"십만 원 벌자고 기계를 돌려? 한성 일 하나면 삼백은 남았어."
"아저씨. 방금 그 손님, 뭐 하고 갈 것 같습니까?"
"뭘 해. 집에 가겠지."
"카페에 후기를 씁니다. '세 군데서 퇴짜 맞았는데 태호인쇄가 해줬다'고. 목마른 동네에서 물 준 가게가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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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뒤. 나는 그 말을 정정해야 했다.
어떻게 되는 정도가 아니었다.
"사장님! 오늘만 견적 문의 열한 건이요! 어제 온 것도 아직 답 못 했는데!"
미스 김이 비명을 질렀다. 전화가 울리고, 팩스가 토해내듯 원고를 뱉었다. 멈췄던 기계 세 대 중 두 대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그 소란 한가운데서, 미스 김이 수화기를 막고 나를 불렀다. 얼굴이 이상했다.
"사장님... 근데 이 전화는 좀 받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어딘데요?"
"은행이요. 공장 담보 대출 만기가... 다음 주래요."
아. 그거.
전생의 나는 그 만기를 한성 어음 믿고 연장했다가, 겨울에 지옥을 봤다.
*(4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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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화 예고
밀려드는 주문, 그러나 돈이 도는 속도는 주문 속도를 못 따라간다. 대출 만기 앞에서 태호가 꺼낸 수는 이 바닥 상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 "돈을 먼저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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