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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한 인쇄소 사장, 10년 전으로 돌아가다 — 6화/ 반값 견적서

sunghoon79797 2026. 7. 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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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 한성출판이 예고된 날짜에 부도났다. 대성인쇄는 사억을 물렸고, 태호를 비웃던 업계는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태호에게 사장 자리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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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 강태호.

새 명함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전쟁이 시작됐다.

"사장님, 이것 좀 보세요."

김 대리가 내민 건 우리 단골손님이 보내온 견적서 사진이었다. 대성인쇄 로고가 박힌 견적서.

**시집 100부 인쇄 — 175,000원.**

우리 단가의 딱 절반이었다.

"이 가격이면 종이값 빼고 남는 게 없는데... 아니, 남는 게 아니라 찍을수록 손해예요. 대성은 왜 이런 짓을..."

"손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네?"

"우리 손님 뺏어서 돈 벌자는 게 아니에요. 밑지고 팔아서 우리를 말려 죽이고, 우리가 쓰러지면 그때 가격을 올리겠다는 겁니다. 사억 물린 화풀이를 이쪽으로 하는 거고요."

전생에도 봤던 수법이다. 조대성은 항상 이랬다. 머리가 아니라 덩치로 싸우는 놈. 자기 출혈을 견디는 힘으로 상대를 먼저 쓰러뜨리는 방식. 그리고 전생의 태호인쇄는 실제로 이 수법에 말라 죽어갔다.

하지만 그건 상대가 같이 가격 싸움을 해줄 때 얘기다.

"사장님, 우리도 내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벌써 두 건이 대성으로 넘어갔대요."

"안 내립니다."

"네?! 그럼 손님 다 뺏겨요!"

"김 대리. 우리 손님들이 우리를 왜 쓰는지 아세요?"

김 대리가 머뭇거렸다. 나는 게시판에 붙여둔 후기 출력물을 가리켰다. 개업 때부터 손님들이 카페에 올린 후기들.

"싸서가 아닙니다. '입금하면 3일 안에 시작한다', '망친 판은 두말없이 다시 찍어준다', '규격 파일만 주면 알아서 해준다'. 이거 때문에 옵니다. 대성이 반값에 흉내 낼 수 있는 건 가격뿐이에요."

"그래도 반값인데..."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걸 합니다. 오늘부터 모든 주문에 인쇄 견본 한 부를 먼저 보내드립니다. 본 인쇄 전에 실물 확인하고 진행하는 거죠."

"견본을요? 그럼 작업이 두 번인데, 원가가..."

"권당 몇천 원 늘어요. 대신 '내 책이 어떻게 나올지 미리 본다'는 건 이 바닥에 없던 서비스입니다. 반값이랑 견본이랑, 첫 책 내는 사람이 뭘 고를 것 같습니까?"

작가들한테 책은 상품이 아니라 자식이다. 나는 그걸 10년 뒤의 시장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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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났다.

대성으로 넘어갔던 손님 두 명 중 한 명이 돌아왔다. 인쇄 상태가 엉망이었는데 항의하니까 "그 가격에 뭘 바라냐"는 소리를 들었단다. 그 후기가 카페에 박제됐고, 대성의 반값 견적은 그날부로 '싼 게 비지떡'의 동의어가 됐다.

"사장님! 이번 달 신규 주문 이백 건 돌파요!"

김 대리가 만세를 불렀다. 박씨 아저씨도 요즘은 기계 세 대를 견본 전용으로 돌리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런데 그날 저녁이었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박씨 아저씨가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뭔가 말할 듯 말 듯 서성이다가, 결국 그냥 가방을 들었다.

"아저씨. 할 말 있으시죠."

박씨 아저씨가 멈춰 섰다. 등을 보인 채로,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사장. 나 어제 조대성이 만났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전생의 기억 하나가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공장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대성으로 넘어간 사람. 25년 우리 기계를 만진 손으로 대성의 기계를 돌리게 된 사람.

박씨 아저씨였다.

"월급 세 배를 주겠대. 기장 자리에, 아파트 전세금까지."

아저씨가 천천히 돌아섰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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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화 예고
돈으로 사람을 빼가는 조대성, 그리고 흔들리는 25년의 의리. 하지만 태호는 안다 — 전생에 대성으로 간 박씨 아저씨가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이번엔 그 미래를 말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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